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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기자 최면요법 체험기

  • 2019-07-02 1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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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또렷하다 느꼈는데... 울음 터져 나와 당황

'유혹의 선'이란 영화가 있었다. 사후세계를 경험한 어느 의대생들에게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들. 기억 저편에 꼭꼭 감춰 왔던 잠재의식이 깨어나면서 유년시절의 끔찍했던 추억이나 죄의식이 스스로를 공격한다는 내용이다.

일명 '레드 썬'으로 더 친숙한 최면술. TV 속 최면은 통마늘을 아몬드처럼 씹게 만들고 몇백 년 전의 전생을 그림책 보듯 술술 이야기하게도 한다. 마술보다 신기하고 불가사의하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들. 저게 사실일까, 나도 최면에 걸릴 수 있을까.

심연처럼 깊은 인간의 잠재의식. 최면은 이 아득한 곳으로의 여행을 가능케 하는 승차권이다. '내 마음 속의 나를 만나러 가는 여행' 최면을 경험했다. 내용은 믿거나 말거나….

#최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

여느 분야가 그렇듯 최면시술 기관 역시 대부분 서울에 몰려 있다. 부산에서 최면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서너 곳 정도에 불과하다. 기자가 찾은 곳은 연제구 연산동 탑마트 맞은편에 있는 부산최면치료연구원.

때마침 대입 피아노 실기를 앞둔 수험생이 최면시술을 받고 있었다. 시험관들 앞에만 서면 긴장으로 제 실력을 발휘 못하는 일종의 대중공포증. 열흘 전쯤 부모와 함께 이 곳을 찾았고 이날이 세번째 시술이었다. 이미 두 차례의 최면으로 증세가 많이 호전된 상태다.

이날은 대학에 합격한 후 청중 앞에서 당당히 피아노를 연주하는 미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이 실시됐다.

시술은 소파에 앉은 채 가족이 지켜보는 데서 진행됐다. 안병규(66) 원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암시를 던졌다.

"너는 지금 수많은 청중 앞에서 환상적인 연주를 하고 있다." 그러자 실제 피아노 건반을 치듯 열 손가락을 허공에 올리고 열심히 뭔가를 두드리는 동작을 취했다. TV에서 봤던 그 장면이다.

"동생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조금 머뭇대더니 "학교에서 사회 수업을 받고 있다"고 나즈막히 답했다. 짧은 최면과 암시만으로 유체이탈에 성공한 것. 눈으로 보고 있지만 선뜻 믿기 어렵다.

최면연구원을 찾아 오는 계층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우울증 불면증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집중력·암기력을 올려 달라는 중학생부터 사귀던 여인과 헤어져 그 기억을 지워 달라는 예순 노인까지 사연도 목적도 천차만별이다. 말을 더듬거나 잠잘 때 이를 가는 버릇을 고쳐달라고 하소연하기도 하고, 간혹 집안에 숨겨둔 비상금을 찾지 못해 최면연구원을 노크하는 이도 있다. 안 원장은 이 모두 최면시술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한다.

최면은 마음이 병을 유발시키는 '히스테리성 장애'에 효과가 크다고 한다.

"몇해 전 시력이 나쁜 고등학생이 찾아 왔습니다. 최면에서 깨고 나면 달력의 작은 글자도 잘 보일 거라고 암시를 걸었죠. 이후 실제 시력이 좋아져 달력의 글자를 알아보더군요. 가성근시였던 거죠." 안 원장은 0.5 정도의 시력을 가진 근시 학생 20%는 한번의 최면시술만으로도 안경을 벗게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다.

#나, 최면에 걸린거 맞아?

대여섯 평 남짓한 최면치료연구원은 생각했던 것보다 좁고 추루했다. 기자의 속내를 알아차린듯 안 원장은 "최면과 사무실 크기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웃는다. 중·고교 국어교사와 행정사를 거친 안 원장은 40년 넘게 최면 연구에 매진한 베테랑 최면술사다. 지난 2000년에는 목격자의 기억을 되살려 8명을 살해한 연쇄살인강도의 몽타주를 만들어 범인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면을 받기 전 몇가지 감응테스트를 했다. 최면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뛰어날수록 효과가 좋다. 또 고개를 숙이고 두 눈을 정수리 쪽으로 치켜 떴을 때 눈의 흰자위가 많을수록 최면에 쉽게 빠져 든다고 한다. 테스트 결과 기자의 최면체질은 중간 정도. 하지만 최면 반응은 체질보다는 시술자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절대적이다. 이를 '라포르' 라고 부른다.

최면을 통해 고치고 싶은 기자의 고충은 '땀'이다. 원체 땀이 많아 여름나기가 힘겹다. 집안 내력쯤으로 여겼는데 안 원장은 "반드시 심리적 이유가 있다"고 잘라 말한다. 그밖에 몇가지 문제점도 귀띔하자 이 역시 "최면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최면에 들어가기 전 단전호흡으로 온 몸의 긴장을 풀었다. 그래도 '최면에 걸릴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10분간 얕은 최면단계를 끝내고 기자를 트랜스(몽롱한 최면) 상태로 유도하기 위해 숫자를 10부터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열, 아홉…하나! 당신은 이제 최면에 빠졌습니다. 살아 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안 원장이 이런저런 질문과 상상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온갖 잡념으로 가득했다. 옆에서 울리는 휴대전화 벨소리에 사진기자가 눌러대는 카메라 셔터음까지 또렷한데…. 지금 내가 최면에 걸리기는 한 걸까.

수차례의 문답 끝에 안 원장은 '나름대로' 땀을 많이 흘리는 원인을 찾아냈다. 고등학교 체육수업, 땡볕 아래에서 단체 기합을 받던 중 잠시 정신을 잃었던 기억을 일깨워 낸 것. "예민한 시절에 상처 받은 자존심이 그 뒤로 햇볕을 멀리하게 하고 땀이 많은 체질로 바꿔 놓았다"는 설명이다.

안 원장은 또 들추기 싫은 어릴적 기억 한 조각도 끄집어 냈다. 그 순간 주체 못할 슬픔과 까닭모를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 내렸다. "마음껏 울고 죄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세요. 충분히 속죄했으니 더는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세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듯 안 원장의 따뜻한 음성이 들려왔다.

질문에 대한 모든 의사표시는 무의식이 아닌 이성적 판단에서 나왔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왜 그 대목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을까. 안 원장은 "최면에 빠졌기 때문"라고 일러준다.

"최면에 걸리고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주변의 온갖 잡음과 기억이 또렷한데 무슨 최면이냐는 거죠. 하지만 시술이 끝나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자가 정말 최면에 걸렸는지는 솔직히 알 수 없다. 최면상태라고는 해도 의식이 어느 정도 명확한데다 언제든 몸을 가눌 수 있을 것같았다. 더욱이 기사화해야하는 '직업병'탓에 최면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시술 후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듯 마음이 가뿐하고 머리도 한결 맑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후 유체이탈을 경험하기 위해 한차례 더 시술을 받았지만, 최면은 먹히질 않았다. 최면을 풀기도 전에 눈을 뜨고 몸을 세우는 바람에 조금 멋쩍은(?) 상황이 연출됐다.

#마법의 공간 '잠재의식'

"최면은 잠재의식과 현재의식을 연결하는 고리이지 마술이 아닙니다."

안 원장은 TV에 비치는 '무대 최면'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선정적인 방송이 최면을 마술이나 서커스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방송은 사전에 최면 감응도가 뛰어난 사람들만 선별하기 때문에 쉽게 깊은 최면에 빠지지만, 실상 그런 최면을 경험하는 경우는 5%에 불과하다고 한다.

안 원장은 인간의 의식세계는 빙산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수면 위에 떠 있는 작은 빙산 조각이 이성적인 판단을 관장하는 현재의식이고, 수면 아래 거대하게 감춰진 부분이 잠재의식이다. 잠재의식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인류의 모든 창의적 영감도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명상 요가 참선 심지어 종교적 성찰까지도 모두 자신의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간 일종의 최면상태라고 주장한다. 빙의(귀신들림) 역시 잠재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단다.

"잠재의식은 무한한 힘을 갖고 있는 반면에 무비판적이고 언제나 깨어 있습니다. 잘못된 씨가 그곳에 뿌려지면 그대로 독버섯으로 자라게 됩니다."

과거(특히 유년시절)의 어느 경험·고민거리·죄책감이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잠재의식 속에 파고 들어가 세월이 흐른 뒤 몸과 마음을 황폐화시킨다는 뜻이다.

"육체와 마음은 하나입니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픈 법이죠. 최면은 그 마음을 달래 병든 몸을 치유하는 겁니다."


글=김성한 기자 honey@kookje.co.kr

사진=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최면치료연구원 안병규 원장
" 기억을 찾아주고 지워줍니다 "
최면은 잠재의식 나침반
범죄해결·질병치료 도움
 
 
 

컴퓨터의 데이터처럼 사람의 기억도 되살리거나 지울 수 있을까.

그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한다. 본래 의미의 지움은 아니지만, 어느 수준까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만든다는 것이다.

부산 연제구 연산동 최면치료연구원 안병규(65·사진) 원장은 최면을 통해 자신이 찾지 못하는 잠재의식 속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잠재의식은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과 비슷합니다.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잠재의식 속에는 남아있게 되는데, 이를 불러내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 있죠."

자신도 모르는 과거 어느 순간의 경험이나 고민거리가 마음 속에 쌓여 여러가지 질병을 유발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난 7월 극심한 고소공포증을 호소하는 29세의 남자가 찾아왔지요. 최면을 걸어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보니 여섯살 때 2층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더군요. 자신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그 사건이 고소공포증을 유발했던 것입니다."

지난 6월, 17년째 불면증을 앓아오던 한 의사의 경우도 기억을 되짚어보니 어릴 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한 심적 불안이 요인이 돼 잠재의식 속에서 키워져왔다는 게 안 원장의 설명이다.

안 원장은 지난 96년 부산대 여교수 K모씨 피살사건과 2000년 8명을 살해한 연쇄살인강도 J모씨의 몽타주를 목격자의 흐린 기억을 되살려 만들어내기도 했다.

특히 J씨의 경우 몇개월 뒤 충남 천안에서 다른 강도사건을 저지르다 검거됐으나 당시 몽타주를 기억한 형사가 여죄를 추궁, 부산사건과의 관련성을 밝혀냈다.

'너무나도 생생한 기억을 지울 수 없겠냐'며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난 2월 60세 정도된 의뢰인이 찾아왔었습니다. 10년 연하의 유부녀와 10년 가까이 사귀다 얼마전 헤어졌는데, 그리움과 죄책감을 지울 수 없다며 도와달라더군요. 사실 인간의 기억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당시의 감정을 최대한 축소시켜 그냥 스쳐 지나갔던 사람처럼 기억을 퇴색시킬 수는 있죠. 그래서 그렇게 해드렸더니 아주 고마워 하더군요."

연애하던 남자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려는 젊은 여자 의뢰인들의 경우, 이전의 애인을 잊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결혼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마치 있었던 것처럼 사실로 인식하도록 주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범죄행위나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높죠. 위험한 행동입니다."

안 원장은 "최면은 무궁무진한 잠재의식을 활용, 잊혀진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정신적인 트러블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아직 보급이 많이 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제신문 이원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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