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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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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 관리자 (mind)
  • 2019-06-28 17: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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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증상은 범 불안장애를 일으킨다. 또한, 공포심이 심하다. 
대인공포, 질병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 수면 장애, 소화 장애, 불안 공포 심리를 떨치려고 하여도 안 되고  떨치려고 하면 오히려 더 커질 수가 있다. 
때로는 공포심이 다른 대상에 전이되기도 한다. 이를 공포조건화 라고 한다. 
40대 B씨는 컴퓨터 관계학 대학 강사였다. 강의실 강단에 서서 힘이 없어서 쓰러질 것 같아 칠판에 기대있기도 했다. 여름 방학 중 본원에 ,50미터가까이 왔다 하여 필자가 마중 나가 보니 은행나무 가로수에 기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었다. 
사무실에 데려와서 의자에 앉으라 하니까 앉을 힘도 없다며 한동안 벽에 기대고 있었다. 
그는 여름철에는 땀을 많이 흘리고 숨을 헐떡일 정도로 호흡이 곤란해지며 심한 협소 공포, 고소공포증을 가졌고, 가장 큰 문제는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머리가 어지러울 때가 있고, 남의 시선을 바로 못 본다고  안절부절 하였다. 
발병 후 부황을 뜨고는 심장이 심하게 뛰었고 혈압이 높아졌다. 
30세에 침을 맞은 후 기절한 적이 있었고, 그때 몸이 굳어졌고 손발이 오그라졌으며 뒷골이 뻣뻣하게 당겼다. 계속되는 두통이 있었다. 얼굴에 열이 달아올랐다. 
옛날에는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낯선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기 힘들었다. 
대중목욕탕에서는 열기를 많이 느껴 힘들어했다. 
음식점에 사람들이 있으면 배가 고파도 들어가지를 못했다. 
 
<최면으로 알아낸 심층심리>

초등학교 다니기 이전에 바닷가에서 두 사람의 시신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무렵 산에 갔을 때도 자살한 시체를 본 적 있었다. 
할아버지 시체를 보기도 했다. 
이들 시체를 보고 많이 놀랐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심리가 바닥에 깔려있었다. 
침에 대한 공포심은 유아 시 경기를 자주 하여 호흡이 정지 되었을 때 가슴이 답답하던 중 손가락과 코 밑에 누가 바늘로 찔러 숨을 쉬게 한 경험이 있는데 가족으로부터 단명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도 죽음에 대한 공포심의 심화에 일조하였다. 
이후, 주사 맞는 일이 겁나서 이날 평생 한 번도 병원에 간 적이 없었다. 
30세 때 침을 맞다가 정신을 잃었던 것은 유아 시 바늘로 경기를 땄던 적과 관련이 있었다. 
고소공포증의 발병원인은 유년시절 비행기 날개 같은 알미늄 철제 구조물로 건너도록 만든 다리 위에 서서 굴리고 놀다가 냇고랑에 떨어져서 이마를 다친 적이 있었으며, 초등 3년 때 운동장에 있던 교장선생님이 훈시하던 단상에서 친구와 축구공을 서로 가지려 하다가 운동장에 떨어진 적이 있었고, 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진 적도 있었고, 초등 저학년 때 형 친구들이 4층 베란다를 건너갈 때 떨어져 죽을 것 같다 몹시 불안했으며 그 곳이 좁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협소공포로 진행되었다. 그 당시 잠재의식에 각인된 협소공포심리가 성인이 되어서도 나타났다. 대학 1년 때 통술집에 가서 분위기가 시끄러울 때에 협소공포 심리를 경험했다.

37세 K씨에 대하여 공포조건의 형성을 보자. 그는 공황장애로 십 수 년을 고생하고 있었다. 
정신 약물을 4~5년 투약하였고, 절에 가서 수양도 수년 하였으며 기 치료, 무속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았으나 허탕이었다. 그는 고교 시 덩치 큰  상급생의 이름 첫 자가 ‘동'자가 들었는데 그가 K씨에게 일본 놈 나카무라 같다고 말하여 놀려 댔고 다른 친구들도 따라 놀려댔다. K씨가 이마가 넓고 벗겨져 나카무라라는 별칭을 불렀다. 
그는 그 말이 짜증나게 듣기 싫었다. 이후 서울에서 군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가 직장인 중에 일본 놈 같다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나빠 직장을 그만두고 농촌 부모가 사는 곳에 농장 일을 거들기로 했다 . 동네 이장 이름 첫 자가 ‘동'자였는데 그는 이장이 보기 싫어졌다. 이장이 몰던 차량 번호가 ‘66‘ 이라는 숫자가 들어 있었는데 그 이후 숫자 6자가 보기 싫어졌다. 
한번은 이장이 노란 색 잠바를 입고 있었는데 그 이후에 노란색이 보기 싫어졌다. 
이장 부인이 부녀회장으로 이웃돕기 한다고 화장지 한 꾸러미를 가져와서 팔 천 원이라 하여 만원을 주고 거스름돈  2천원을 받고는  부녀회장이 돌아가자 그 부인에게서 받은 2천 원을 찢어 버렸다. 이후 부인도 보기 싫어졌다가 동내 사람 누구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책에서 있는 숫자 6자를 봐도 불안해졌고 동래구의 ‘동'자가 보이자 고개가 돌아 가버린다고 했다. 이와 같이 공포심은 또 다른 것으로 전이되기도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쯤 되어서는 그 이전 별 문제가 없었다면 어느 정도 저항 심리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 놈 나카무라 같다는 말이 예사로 들릴 수 있었으나 그는 정서적으로는 어렸다. 이후 알아본 결과 중학교 졸업 할 때까지 항상 누나와 함께 잠을 잤으며 누나는 항상 그를 안고 끼고 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여 질병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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